# 1층부터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가기

 

출발 한 3~4일전 쯤이었나. 번호표와 신발에 부착하는 기록치를 등기로 받아놓고는 친구만나고 또 만나고 등등 하느라 새까맣게 잊었었다. 아니 날짜 개념이 아예 사라졌었던 것 같다. 집에 놀러온 친구에게 이거 63빌딩오르기 대회 등기왔다고 내 입으로 말해놓고는 그게 내일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일요일 아침. 이상하게 일찍 일어나지더라고. 7시 반에 일어났는데 뭔가 찜찜한 기분. 뭘까. 이 나사 빠진 느낌은. 방에 나뒹구는 번호표를 보고 혹시? 하고 검색을 해보니 오늘이 바로 그날!! 깜짝 놀라서 얼른 씻고 준비하고 도착하니 9시 10분이었다. 다행히 아직 시작하기 전이었고 제법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간식으로 준다는 바나나는 이미 동이 났더라. 흑흑. 그저 물만 챙긴 채 부랴부랴 번호표 부착하고 신발에 기록치 다는 등 준비를 하고 출발하는 곳이 어디인가 두리번 거리며 행사무대 주변을 알짱댔다. 그런데 뒤쪽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세의 바다처럼 사람들을 가르고 카메라 무기를 장착하며 나타난 무리들.

 

그들은 바로 룸메이트 멤버들이었다. 나나, 료헤이, 이국주, 조세호, 써니, 잭슨. 이들 중 나의 시선을 가장 사로 잡은 사람은 이국주였다. 마치 '나 연예인이야!!!!' 하는 듯한 아우라. 오. 저 강렬한 포스. 단숨에 확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듯 했다. 그 다음 눈에 들어온 사람은 료헤이. 잘생겼다ㅎㅎㅎ 생각지도 못한 눈호강을. 감사합니다.

 

 

써니는 키가 작기도 했고, 뒷쪽에서 료헤이 번호표 부착해 주길래 스텝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낯이 익은데 누구지 하고 자세히 보니 써니... 생각보다 조용하고 존재감이 약했다. 하지만 가장 여성스러운 느낌. 내가 남자라면 저런 타입의 여성에게 끌릴 듯.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티비에서 보는 모습 그대로.

 

 

세계 2위 미모다운 분위기를 풍겨주는 나나. 사진이 굉장히 잘 받는다. 하지만 나에게 강렬한 아우라와 포스를 자랑했던 이국주는 사진 안에 그 아우라를 담기엔 한계가 있었다. 이색 복장 소개가 끝나자 룸메이트 멤버들이 무대에 올랐고 음악이 나오자 무대 위에서 열정적으로 춤을 춰주시는 이국주. 정말 열심히 하는 모습. 멋있다. 동갑이지만 언니라고 부르고 싶어지네.

 

 

여간 이제 대회 시작해야지. 먼저 이색복장 입은 사람들부터 간단한 인터뷰 하고 출발시켰다. 인터뷰 하는 이유는 앞사람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인듯 하다. 좁은 계단이다보니 여러 명이 한번에 가면 위험하니까. 난 중후반대 번호여서 번호순으로 출발하면 한참 기다려야 했다. 성격이 좀 급한 까닭으로 먼저 출발하겠다고 하고 출발.

 

 

1층에서 2층 갈땐 M2였다. 그냥 2층도 아니고 왜 M2인거지? 여튼 출발은 하는데 맘이 복잡했다. 올라는 가야하는데 1층부터 인증사진찍자니 에너지 소모되고 발목잡히고. 그래서 그냥 10층마다 찍기로 내멋대로 결정.

 

 

하. 2층부터 숨이 헐떡여졌다. 어쩌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그냥 가는 수밖에 없었다. 죽어라 가자. 2층만에 내가 여길 왜 왔지 하는 생각이 나의 뇌주름을 괴롭혔고. 하지만 내 두 다리는 그저 무릅을 굽혔다 폈다 위만 향해가는 기계처럼 움직인다.

 

 

20층에 올라오니 스텝들이 테이블에 물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그래도 절반은 가야지 하고 30층을 가니 이제 절반왔다고 응원들을 해준다. 이때부터는 오히려 힘이 더 들어가지 않았다. 20층이나 30층이나 40층이나 힘든 느낌은 더해지지 않고 균일했다. 그리고 점점 잡념이 사라져갔다. 그저 몸만 뜨거워지고 있었을 뿐.

 

 

어느덧 45층. 오르느라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앞서 가던 한 커플이 '어? 여긴 44층이 없어' 정신차리고 계단을 보니 정말 44층이 없더라. 그럼 계단오르기 대회는 60층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59층을 오르는 거 아닌가?

 

 

59층, 그리고 60층. 드디어 완주했다. 올라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데스크에서 완주증과 포카리스웨트를 줬고 난 얼른 가서 뻗었다. 땀이 주르륵. 마라톤 할때보다 훨씬 더 몸이 뜨거웠다. 기록은 아직 나오진 않았지만 약 25분정도 걸렸던 것 같다. 처음부터 천천히 오른 덕분에.

 

 

그리고 꼭대기에서 보는 서울 시내의 전경. 서울타워에서 전경을 많이 봤었지만 위치가 다른 이곳에서 보는 전경은 느낌이 좀 색달랐다. 다른 프레임에서 보는 느낌은 이런 거였구나.

 

 

휴식을 취한 후 1층으로 내려오니 기념품을 나눠주며 신발에 부착했던 기록치를 회수해갔다. 또 사람들이 몰려있어서 함 봤더니 룸메이트 멤버들. 나중에 방송에 저들 주변에 알짱대는 내 모습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끝나고 나면 시상식도 있었지만 집에서 계속 소환하는 전화가 오는 까닭으로 그냥 들어갔다. 뭐 사실 경품에 별 관심도 없기도 했고. 집에 가서 기념품을 뜯어보니 휴대형 선풍기였다. 틀어보니 이런 문구가 나오네. 오 신기하다. 그런데 버튼이 고장난 건지 꺼지질 않았다. 그냥 건전지 뺏다 끼는 방식으로 전원을 조절해야 할듯.

 

 

 

 

 *

개인적으로는 마라톤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웠던 경험이다. 내년에도 한번 더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나에게 Good의 느낌을 주는 행위. 이렇게 하나하나 직접 해보면서 나에게 맞는 걸 찾아가고 있는 중. 그리고 하나 찾아냈다. 아주 좋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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