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몇개월만에 읽는 책인지 원. 그동안 여러번 읽으려고 했는데 초반이 잘 읽혀지질 않아 애를 많이 먹었다. 외국저자가 쓴 책이라 번역에 문제가 있나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번역이 아니라 프랑스 작가들이 난해한 표현이나 수식이 복잡한 표현을 쓰는 것 같다. 그 언어의 특성인가 싶기도 하고. 뭐 여튼 읽지 않는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은 매우 흥미로웠다. 읽을 시간이 많이 없는 현대인(이라고 표현하지만 핑계)들에게는 참 솔깃한 제목이다.

 

헌데, 그냥 기술같은 책이 아니었다. 독서에 대한 관념을 부수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관념의 세계와 어떻게 마주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본인이 책에서 받아들인 관념의 세계에서 또다른 세계를 투사하는 것과도 같다. 그리고 그런 관념은 아주 유동적이라는 것.

 

책은 그대로지만 읽는 내가 변하면 같은 책이라도 다르게 해석된다. 그런 느낌을 이미 두번 읽었던 책인시공에서 받았었다. 그리고 책의 관념은 때로는 독자의 머리속에 파고들어가 타자로서 다른 시선으로 보는데 크게 방해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장미의 이름'이란 책을 예로 들어 이야기를 할 때 그걸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스토리 따라가기만 바빴고 주인공의 생각에 동화되어 늙은 수도사의 견해에 참 편협하다 생각했었다. 헌데 여기선 사건을 쫒는 수도사가 문제의 책을 읽지 않아도 내용을 알 수 있다 말하고 관념을 이해한다. 그리고 눈이 멀어 책을 읽을 수 없는 수도사가 다양한 책들의 내용을 알고 있다.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이 책을 읽었지만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책 속에 빠져들어 총체적인 시각을 많이 잃어버렸다는 증거였다.

 

이런 걸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또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모든 독자들은 읽는 순간부터 이미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읽었던 부분들이 흩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인간이기에 어쩔수 없는 현상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이 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얘기했던 '사랑의 블랙홀'의 관계 맺기처럼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상대방의 이상에 맞는 모습을 만들어 다가가기보다는 불완전하지만 주체로서의 자신으로 서는 것. 즉,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견해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 책의 진짜 목적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책을 읽지 않고도 새로운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부끄러움 없이 말할 수 있으려면 가정과 학교에 의해 강압적으로 전파되는 흠결없는 문화라는 강박적인 이미지, 일생 동안 노력해도 일치시킬 수 없는 그 이미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진실보다는 자기 진실이 훨씬 더 중요하다. 우리의 내면을 억압적으로 지배하며 우리 자신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 것, 즉 교양 있는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자만이 자기 진실에 이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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