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범 (미야베 미유키 / 문학동네)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읽혀지는 책이다. 등장인물도 많고 얽힌 이야기가 많아 읽는데 숨이 찰 지경인데도 계속 읽어내려가게 한다. 처음엔 제목만 보고 드라마 갑동이처럼 카피캣이 생기는 건가 추측했다. 하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모방범이 나왔다. 제목의 의미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튀어 나와 감탄했다.
전제적으로 문장은 간단하지만 힘이 있었다. 쉽고 일상적인 말로 사건의 추이와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행동을 깔끔하고 간결하게 묘사하면서도 중요한 메시지는 놓치지 않는다. 긴장을 조였다 풀었다 하며 마지막에 큰 반전을 주는 서스펜스는 없지만 마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듯했고 각 인물의 캐릭터가 입체적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인물은 피해자의 유족 아리마 요시오였다. 평범하지만 마음이 단단하고 통찰력이 뛰어난 할아버지이다. 보통의 추리소설은 젊고 잘생기거나 매력적이고 똑똑한 지식인을 중심잡는 사람으로 세우는걸 많이 봐왔는데 여기선 이 할아버지가 그 중심을 담당한다. 그러고보니 이 책에서 예쁜 애들은 전부 머리가 좀 비었거나 다 죽어버렸다. 작가가 예쁜 애들을 싫어하나? (웃음)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은 책에서 뿌려놓았던 떡밥에서 몇가지는 아직 회수하지 못했다. 히로미 첫살인의 희생자인 같은 반 친구의 죽음을 꿈속에서 직감했던 기미에의 이야기, 그리고 용의자로 지목된 가즈아키의 전화상담에 대한 이야기. 이것에 대해서는 마지막엔 결국 언급되지 못했다. 아무래도 잡지에 연재되었던 거라 그 부분까진 못미쳤나 싶다.
여하튼, 진범의 정체성을 말하는 글귀가 3권 중간쯤에 나오는데 어쩌면 이건 모든 사람의 정체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주목받고 싶고 주인공인 느낌을 원하니까 말이다. 다만 범인처럼 극단적으로 표출하지 않을 뿐.
그 모든 것보다도, 따분하지 않은 것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지향성이라고 할까?
그리고 잠깐 생각하고 덧붙였다.
응, 맞아. 가장 두려운 것은 인생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야.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하고, 아무런 자극도 없는 인생을 보낼 바에에 죽는 편이 낫다는 그런 지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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