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저자가 문학을 스피노자가 말하는 감정의 측면에서 접근하여 자신만의 해석으로 읽어주는 내용이다. 여기에 있는 책들 중 내용을 아는 건 몇 개 있지만 읽은 건 단 한권도 없어서 나중으로 미루려고 했다. 하지만 어느 세월에 그 책들을 찾아 읽게 될지 몰라서 먼저 읽었다. 다행히 책의 내용과 인물의 상황을 먼저 간추려 소개해주어서 그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욕망의 인문학이라 그런가. 점차 어둡고 비관적인 느낌을 받았다. 후반부로 갈수록 느껴지는 작가의 쿨함에 속으로 이 말을 내뱉었다.

 

쿨 좋아하시네!

 

강신주 교수는 쿨한 것을 꽤나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이 책에서 내내 '아님 말고'식의 쿨한 태도를 가질 것을 말한다. 나는 이 의견에 반대다. 자신의 쿨하지 못함을 탓하고 자학하게 만든다랄까. 혹은 자신의 감정을 오판하여 쿨함으로 무장하게 하기도 한다.

 

영원한 것은 없으며 언젠가 모두 떠나기 마련이고 자신도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의 감정에 충실하며 자신이 할수 있는 것을 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한다는 것은 현재에 사는게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건 현재를 사는 것도 미래에 사는 것도 아닌 셈이다. 게다가 현재의 감정은 변하기 마련이다.

 

비유를 하자면 방 안에 수많은 감정상자가 있고 그 중 사랑의 상자가 열려있으면 사랑의 감정상태에 머물러 있게 된다. 그러다 다른 감정의 상자가 열리면서 그 감정이 사랑의 상자를 덮어버리고 열지 못하게 방해를 하는 셈이다. 이때 연인들이 사랑의 감정상자가 닫힌 것을 사랑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헤어진다. 하지만 우리 안의 감정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감정에 빠져들 뿐이다. 그래서 헤어졌다가도 자신 안에 존재하는 사랑의 감정상자를 열고 만나는 것이다.

 

물론 저자 말대로 감정은 영원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순간적인 것만은 아니며 지속적인 것이다. 이 말은 결국 감정은 지속적으로 유지하다가도 결국은 변한다는 뜻이다. 감정이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때마다 바뀌는 자신의 모습이 과연 충만한 삶으로 느껴질까 싶다. 인간은 슬픔을 피하고 기쁨을 쫒는 존재가 맞다. 하지만 현재의 슬픔을 피한다면 더 큰 기쁨은 슬픔을 견뎌낸 뒤에 온다는 것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나와 다른 시선으로 읽어내는 해석은 꽤 재미있었다. 어떤 의견은 공감되기도 했다. 특히 사랑과 잔혹함에 대한 철학자의 어드바이스는 많은 연인들의 감정 변화를 읽어내어 보여준다. 극복하지 못한 나로서는 마음아픈 부분이기도 했다. 책을 덮으면서 슬픔을 견뎌내어 더 큰 기쁨을 얻을 줄 아는 내 인생의 남자주인공을 만나기를 잠시 꿈꿔보았다. 그런데, 만날 수나 있을런지. 태어나긴 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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