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사는 이야기/세상을 읽는 방법

단호한 말투로 묘사하는 문체가 읽는 내내 나를 압도했다. 무겁고 딱딱한 분위기였다. 왜 이렇게 철근에 눌린 것 마냥 갑갑하고 묵직하게 이야기하는 걸까 하며 읽다보니 차츰 알 수 있었다. 이 책이 어떤 사건을 그려내고 있는 지를. 한국 현대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알아챌 것이다. 바로 80년 5월 18일에 광주에서 일어났던 민주화운동을 그려낸 책이었다. 그저 이 책을 추천한다는 말 하나만 믿고 아무런 정보없이 선택했었다. 그래서 소재를 눈치챘을 때 놀라웠다. 이 힘든 소재를 선택하기도 쉽지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작가는 마치 자신이 그 당시를 겪었던 당사자가 된 듯 감정이입을 한 것 같았다. 읽는 내내 나도 살이 떨리고 무서웠을 정도였다. 쓰면 쓸수록,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몰입도가 높아졌다. 초반엔..

작년 즈음에는 짧은 문장 하나만으로도 가슴에 박혀들어와 어쩔 줄을 몰라 그저 눈물만 흘렸더랬다. 그 때 나를 많이 울렸던 문장들은 주로 이곳에서 발췌된 글들이었다. 그래서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보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때와는 달리 읽는 사람의 감성이 많이 달라진 모양이었다. 예전만큼 그 문장들이 아프게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내가 마음이 많이 평온해졌다는 증거였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하품이 날 정도로 지루하고 건조하게 느껴지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행복이다. 이렇게 평온하기 그지 없는 나에게 가장 마음 아팠던 부분은 음식과의 이별했던 이야기다. 우리는 일생토록 많은 음식을 먹으며 지낼 텐데, 그 즐거움을 영영 맛보지 못한다니. 내가 본 이별 중 가장 슬픈 이별이었다. 몸 관..

15년에 읽은 첫 책이다. 이미 12월부터 읽고 있었지만 게으름을 피운 덕분에 독서일기를 이제사 쓰게 되었다. 미국문화에 대하여 여러가지 부분들을 조명하여 이렇다라고 분석 또는 본인의 생각과 경험을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책이 나올 당시라면 으흠~ 그렇군 하면서 읽었을 법 했지만 어느 정도 미국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여러 칼럼 덕분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라 그런지 그다지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재미가 없었다. 제목은 이게 뭐지? 하고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읽어보니 별 내용이 없었다. 그래서인가. 딱히 기억나는 내용도 없다. 그저 미국이란 나라가 거대하고 수많은 자본이 지배하여 옴싹달싹 할 수 없다는 느낌이 좀 강할 뿐이다. 이렇게 많은 돈들이 이익관계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나라라면..

어느새 한 해가 이렇게 지나갔다. 올해 초만 해도 뭔가 해야할 것 같은 조바심에 안절부절했던 게 벌써 옛날 일 같다. 지금 이렇게 돌아보니 올해는 나에게 다른 해보다 유난히 많은 일들이 벌어졌었고 많은 것을 했던 해이다. 가장 충만하게 채운 해였지만 욕심이 많았는지 조금 아쉽기도 하다. 그 아쉬움중의 하나가 읽었던 책의 권수. 14년 한 해동안 23개의 작품을 읽었다. 대략 50권이라도 읽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열심히 읽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읽은 책들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읽었던 책들은 딱 한권 빼고는 전부 집에 있었거나 중고서점에서 샀던 책들이다. 앞으로 더 많은 책들을 보기 위해서 다시 보고싶은 책은 남기고 나머지는 다시 중고서점에 팔았다. 그렇게 남은 책들을 모아보니 8권. 그래서 올해의 결산..

요즘 내가 마음이 많이 편안해진 것 같다. 힘들 때 읽던 책이 손에서 점점 멀어지는 걸 보니. 붙잡을 땐 언제고, 좀 편해졌다고 놓고 있다. 처음 마음을 유지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임을 다시 느끼고 있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다시 책을 읽어냈다. 짤막짤막 읽다보니 거의 한달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 책은 E. 자마틴 "우리들",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와 더불어 디스토피아 3대 소설이라고 한다. 사실 이건 검색해봐서 알았다. 다만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읽어본 적이 있었고 조지 오웰의 1984와 비교를 많이 해서 이 책이 궁금했다. 멋진 신세계를 먼저 읽었다 보니 비교를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1984의 세계는 숨막히고 갑갑한 통제의 사회였지만 멋진 신세계의 세계는 인..

사람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책의 이야기를 자기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그 까닭에 책을 읽다가 '빌어먹을 닉'이라고 욕을 했었다. 그의 무신경하고 책임없고 존중하지 않는 구닥다리 마초스러운 모습에 누군가를 떠올리며. 그러나 그 욕은 딱 1부까지만이었다. 2부가 되자 에미이에 공감하던 나는 흠칫 놀라고야 말았다. 이 여자의 쓸데없는 정성스러움은 대체 뭐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에이미의 복잡한 내면은 어떻게 생겨먹은 걸까. 뭐 헤어지고 나서 상대방에 대한 원망과 증오에 사로잡히는 마음은 십분 이해한다. 하물며 5년을 함께 산 남편이라면 그 감정은 더욱 극에 달하겠지. 에이미는 그 감정의 모든 에너지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 기어이 집요하게 해내는 사람 같았다. 절대 ..

벌써 온다 리쿠의 책은 세번째다. 불안한 동화는 예전에 읽은 거라 감상을 남기지 않았지만 밤의 피크닉에 이어 상당히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이 소설은 서술방식이 정말 독특했다. 제목 그대로 Q & A 형식. 원인이 존재하지 않는 대형마트의 기이한 재난을 취재하는 한 사람이 직·간접적으로 재난을 겪었던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각 챕터마다 오직 두 사람만의 대화가 오간다. 처음에는 그 사건의 원인을 찾아가는 이야기인가 했는데, 사건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재난으로 인해 겪게 된 감정의 변화, 원래 가지고 있었던 내면 깊은 곳의 무언가의 발현, 자신의 추악한 본성의 발견과 그 고통 등. 그리고 한 시점에 머물지 않고 각 대화에 시간 차이를 두고 연대기 형식으로 사람들의 변화도 함께 그려냈다. 우리에게도 충..

제목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뽑은 책이다. 더불어 표지 디자인도. 많은 사람들이 표지의 오묘한 느낌에 이 책을 집어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신비한 프롤로그에 끔찍한 살인 사건의 주인공으로부터 묵직하게 시작한다.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많이 풀어놓아 산만하기도 했지만 나름 집중도 잘되고 몰입도도 높았었다. 딱 중반까지는 그랬다. 아쉽게도 중후반에 들어가니 개연성이 많이 떨어졌고 당황스러웠다. 이리저리 풀어놓은 이야기들이 큰 흐름에 편입되지 못하고 흩어져 버렸다. 몇달 전 읽은 모방범도 풀어놓은 이야기가 많았었고 뜬금없이 뭐지? 하는 사건도 있었지만 그것도 마지막에 가서는 유의미하게 잘 엮어냈었는데, 이 작가는 그렇게 영리하지 못한 것 같았다. 특히 주인공 토비아스. 그가 왜 기억을 잃었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

요즘 여행도 연달아 가고 수영도 하고 옛날 이야기도 쓰느라 책 읽는데 좀 소홀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순차적으로 어느 정도 해나가면서 여유가 생겼을 때 집어든 책. 읽은 책이 조금씩 쌓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펜을 잡고 글 쓰게 하는 최초의 원동력은 고통이 아닐까 싶다. 소설이나 그림 등 문화예술의 최초 시작점은 아픔에서 시작하는 과정인게 많았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작가 스스로의 아픔인지 상상인진 모르지만 여하튼 시작은 주인공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털어놓는 데서 시작한다. 그녀를 떠난 남자친구의 빈자리를 느끼는 데서부터. 이 이야기는 여자주인공이 존재하지만 그녀가 주인공이 아닌 것 같았다. 주인공의 시점이지만 그녀가 상처를 견뎌내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과 낯선 환경, 낯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