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 푸른숲)
사람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책의 이야기를 자기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그 까닭에 책을 읽다가 '빌어먹을 닉'이라고 욕을 했었다. 그의 무신경하고 책임없고 존중하지 않는 구닥다리 마초스러운 모습에 누군가를 떠올리며.
그러나 그 욕은 딱 1부까지만이었다. 2부가 되자 에미이에 공감하던 나는 흠칫 놀라고야 말았다. 이 여자의 쓸데없는 정성스러움은 대체 뭐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에이미의 복잡한 내면은 어떻게 생겨먹은 걸까.
뭐 헤어지고 나서 상대방에 대한 원망과 증오에 사로잡히는 마음은 십분 이해한다. 하물며 5년을 함께 산 남편이라면 그 감정은 더욱 극에 달하겠지. 에이미는 그 감정의 모든 에너지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 기어이 집요하게 해내는 사람 같았다. 절대 포기를 모른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상황을 체념하거나 수용하고 그럴 수 있다고 이해를 하지만 그녀는 그것조차 자신의 발 아래 두고 통제하는 듯 하다.
그렇다고 에이미가 공감능력이 아주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닉이 공감능력이 없고 무의식적이었다. 그 두사람의 차이를 말하자면, 닉은 돌을 무심코 던져 개구리를 죽인다면 에이미는 개구리를 어떻게 죽일 것인지 다각도로 파헤쳐 가장 아프고 고통스럽게 죽인다. 맞아 죽을 개구리의 아픔을 알고 그 강도까지 계산하는 행위다. 그래서 난 그녀의 의식 있는 행동들이 섬뜩하고 떨린다. (참고로 난 저 말을 인용해서 맞아죽어봤던 개구리다.)
그리고 이젠 닉도 불쌍하고 에이미도 불쌍하게 느껴졌다. 나도 닉처럼 솔직하지 못하고 사실을 말하는 걸 어려워 했다. 편하고 쉬운 길로 가기 위해 숨기곤 했다. 그런식으로 비극이 만들어진다. 결코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이든 혼자 만드는 것은 없으며 늘 함께 만들어간다. 행복도 함께 만들어가는 것처럼.
넌 항상 진실을 다루는 걸 어려워 했어. 진지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 언제나 사소한 거짓말을 했어. 항상 가장 쉬운 길을 택했던 거야. <중략> 하지만 넌 어린애처럼 사소한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어. 아직도 모든 사람들이 네가 완벽하다고 생각하게 하려고 필사적이야. 절대 나쁜 사람이되고 싶어 하지 않지.
영화 보기에 앞서 먼저 원작을 읽고 싶은 마음에 책을 구해서 읽었는데 빨리 영화를 보고 싶어졌다. 책은 실제 썼을 법한 욕설 등으로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해서 긴장하게 했는데 현학적이고 꾸며낸 어휘가 아니라 참 맘에 들었다. 아쉬운 점은 책의 절반까지는 재미가 없어서 읽기 힘들었다는 점. 후반부의 반전과 뜻밖의 긴장감, 몰입도가 이 책을 살려냈다. 영화는 이런 내용을 어떻게 그려냈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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