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극의 내용도, 명대사도 아니었다. 시작하기 전에 볼 수 있는, 작가가 아내 칼로타에게 바치는 헌사였다.

 

사랑하는 당신,

내 묵은 슬픔을 눈물로, 피로 쓴 이 극의 원고를 당신에게 바치오.

행복을 기념하는 날의 선물로는 슬프고 부적당한 것인지도 모르겠소.

그러나 당신은 이해하겠지.

내게 사랑에 대한 신념을 주어

마침내 죽은 가족들을 마주하고 이 극을 쓸 수 있도록 해준,

고뇌에 시달리는 티론 가족 네 사람 모두에 대한

깊은 연민과 이해와 용서로 이 글을 쓰도록 해준,

당신의 사랑과 다정함에 감사하는 뜻으로

이 글을 바치오.

 

소중한 내 사랑, 당신과의 십이년은

빛으로의, 사랑으로의 여로였소,

내 감사의 마음을 당신은 알 것이오.

내 사랑도!

 

정말이지, 만약 내가 이 아픔을 쓰려고 했다면 너무 고통스러워서 눈물로 매일 밤을 보냈을 것이다. 서로를 공격하고 자기방어를 위해 변명하고 상처입히고 상처를 입는 고통의 하루였다. 이 하루의 묘사만으로 쓰러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정말 비관적이고 음울하고 슬픈 극이었다. 하지만 그저 아픈 과거의 묘사였을 뿐이라면 이 극이 이렇게 위대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각각 네 인물의 감정 묘사를 보면 왜 그가 그렇게 말을 했는지, 이런 언사와 행동을 하는지, 이런 말을 할 땐 어떤 마음과 어떤 표정으로 하는지 등 각 인물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쓸수 없는 표현들이었다.

 

그들도 고통스러웠구나, 그렇게 그들도 자신의 고통을 잊어보려 했구나 하는 마음으로 쓰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그 이해와 용서를 네 인물들이 지니고 있는 사랑의 감정에서 볼 수 있었다. 사랑하기에 그만큼 증오스럽고 그래서 서로 상처를 입히면서도 끝내 손을 놓지 못하는 절절함이 보였다.

 

또 이 작품의 위대한 점은 작가의 사적인 아픔의 예술적 승화뿐만이 아니다. 아일랜드 감자대기근으로 인한 이민자들의 비극이기도 하다. 극중 인물들은 아일랜드 촌놈하며 스스로를 자조하고 또 차별을 피하기 위해 아일랜드 사투리를 고친다. 그럼에도 그들의 생활은 비극이기에 술로 그 고통을 잊어보려 한다. 이런 고통의 시간들이 아일랜드인들을 위대한 예술가로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리게 하는 그들의 저력이 참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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