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라는 건 참 많은 걸 담고 있다. 역사와 문화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관과 인간 자체의 본성은 물론 인류가 가지는 보편적인 특성까지 아주 많다. 그래서 신화는 나에게 아주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다. 대체로 우리가 접하는 신화는 우리나라의 신화와 그리스 로마 신화, 더 가면 고작해야 북유럽 신화다. 북유럽 신화는 각종 게임과 마블 코믹스 덕분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신화는 아주 낯설다.

 

사게 된 경위는 바이칼 호수 때문이다. 내가 처음 여행을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이 몽골이었고 바이칼이 가장 큰 동기였다. 바이칼 호수는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역사적으로도 아주 신성하고 중요한 장소이다. 아마 민족의 근원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과 이 지역의 신화는 우리랑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결국은 이 책을 집어들게 했다.

 

이 책은 생각보다 꽤나 두껍고 크며 아주 긴 영웅서사시였다. 그리고 발원지가 바이칼호수 일대이다보니 낯선 명칭과 지명들이 난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쑥쑥 읽어나갔다. 역시나 신화라 그런지 비현실과 판타지 그리고 초능력이 난무하며 잔인하기까지 하다.

 

아무렇지 않게 딸을 갈라버리는 어머니 하며 돌아와서 딸을 찾지도 않는 아버지는 또 어떻고. 여기서 이 책의 주석에도 설명이 있지만 모권사회에서 부권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의 갈등으로 보여지는 부분들이 고대 인류사 자체의 특성으로 보였다. 그리고 아들을 낳기 위해 찾아올거라는 생각을 하고 함정을 파는 부분도 그렇고. 남성위주의 사회가 되었단 얘기다.

 

점차 남성 위주의 사회로 변화했지만 그렇다고 여자는 마냥 약하고 순종적인 여자의 모습으로 있지도 않는다. 부인을 구하러 가고 배신해도 내치지 않으며 함부로 대하는 모습이 없었다. 부인들은 여걸의 모습으로 남편을 구하러 가기도 하고 거절과 배신을 하기도 하고 싸움에 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미인은...... 쩝. 만고불변의 진리였다.

 

이 신화가 생각보다 재미있었던 건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처럼 신들이 화나고 슬퍼하고 웃는 인간적인 모습이라는 점이다. 때로는 아둔해지고 실수를 하며 운명을 믿지만 운명과는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신들의 전쟁은 마치 북유럽 신화의 라그나로크가 연상되기도 했다. 하늘에 떨어진 것들이 어떤 지형을 만들거나 정착하는 모습은 일본신화 같았다. 그리고 하늘세계 인간계, 지하세계로 나뉘는 모습이 우리의 토속 무속의 세계관과도 흡사했다.

 

하지만 제사장(샤먼 또는 무당)과 매개를 하는 것이 아닌 직접 내려오고 직접 신과 이야기한다. 제사장이 아예 없진 않지만 점괘를 보게하여 결과가 맘에 안들자 후들겨 팬다. 이 세계관에서는 제사장 보다는 영웅적 지도자에 더 무게를 두었음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나니 좀더 다양한 나라의 신화들을 종합적으로 보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내 안에 이런 신화를 탐구하는 오래된 DNA가 꿈틀거리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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