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문학의 고전으로 책을 읽지 않았어도 제목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심지어 난 이미 줄거리를 알고 있었다. 도서관의 인문학 강좌에서도 들었고 책 읽는 에세이에서 빠짐없이 나오고 영화로도 이미 봐온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 알고 봐서 그런지 뒷내용이 궁금해지는 즐거움은 아쉽게도 없었다.

 

이 책이 흥미로운 건 이야기 플롯이 아닌 캐릭터의 특징과 그 특징의 배경이 되는 시대상 그리고 그 시대의 냉혹한 허상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작가의 문체 덕문이다. 데이지는 아름답지만 속물이며 쉽게 흔들린다. 그 시대에 충분히 있을 법한 상류층의 흔한 속물여자. 왠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 리 같기도 하다.

 

개츠비는 그런 그녀를 얻기 위해 같은 계층으로 올라가려고 갖은 집념을 불사른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과 지고지순함, 그 순수성이 그의 끝은 초라해졌어도 그를 바라본 닉의 시선 속에서는 위대한 개츠비로 탄생한다. 하지만 그는 정말 위대한가.

 

개츠비의 데이지에 대한 사랑이 정말 순수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개츠비는 본래 자신의 구질구질한 모습에 그리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옥스퍼드에서 교육을 받은 상류층의 장교로 스스로를 만든다. 그리고 화려한 저택의 사교계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인 데이지에게 사랑을 느낀다. 상류층이며 뭇 남성들이 차지하려 애쓰는 존재. 데이지의 저택과 그녀를 묘사하는 모습에서 자신이 창조한 또다른 자신인 상류층의 매력적인 남자 개츠비에게 어울리는 여자이기 때문에 데이지를 갈망하는 것으로 보였다.

 

자신의 가상 모습을 만들었지만 현실은 그 존재와 일치하는 상태가 아니었기에 개츠비는 올라가려고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 사이에 속물인 데이지는 자신의 허영심을 채워줄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버린다. 개츠비는 그런 데이지의 허영심을 알기에 매일밤 파티를 열고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으며 그녀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데이지와는 다른, 개츠비의 허영심이 아닐까.

 

그리고 데이지의 죄를 스스로 뒤집어쓰는 모습에선 오히려 진짜 사랑인가 싶었다. 데이지에 대해 감정적 호소와 표현을 절절하게 하지만 그녀 자체에 대한 진지한 관찰과 대화는 없었다. 내 눈에는 자신이 만든 낭만적이고 지고지순한 개츠비의 모습을 사랑해서 최후에는 그 모습으로 마감하기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자기 연민, 자기 포장. 시대의 허상에 사로잡힌 영혼 같다랄까. 그에 비해 데이지와 그의 남편은 너무나도 현실적이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고 떠나버린다. 오히려 윌슨이 더 로맨틱하고 낭만적이었다. 아내의 배신에 울분을 터트리고 슬퍼하고 그녀의 죽음으로 데려간 사람에게 분노로 반응한 그의 모습이 훨씬 더 사랑에 가까웠다.

 

위대한 개츠비. 바스러진 개츠비의 아메리칸 드림과 극명히 대비되는 제목이었다. 시대의 아이러니를 담은 이 책이 역시 고전이구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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